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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여행 #4] 소중한 ‘만남’, 그리고….

느긋함과 여유로움을 추구하는 우리는 오후 한  시까지 침대에서 밍기적 거리다가 호텔을 나섰다. 늘 그래 왔듯 아사쿠사바시 역으로 가서 전철을 탔다. 다른 점이 있다면 ‘SUICA’카드를 소환했다는 것과 목적지가 ‘아키하바라(秋葉原)’가 아닌 ‘신주쿠(新宿)’로 변경되었다는 것이다. 유랑인의 지인 ‘타카유키 카타오타’씨와의 약속만 아니었으면 영락없이 아키하바라로 향했을 것인데 말이지. (웃음) ‘타카유키 카타오카’씨는 오덕의 세계로 빠져드는 우리에게 잠시나마 ‘탈덕’의 길을 제시해 주었다. 이것은 구원이라고 해야 하는가? 할렐루야~

도쿄 교통카드 SUICA

도쿄 교통카드 SUICA

SUICA카드는 일일이 전철표 사는 게 귀찮다는 이유로 질러버렸다. (일본의 교통카드. 카드를 반납하면 보증금 500엔은 돌려준다.) 이틀 동안 도쿄의 지옥 같은 퇴근 시간을 체험하면서 표 끊는 것도 일이란 걸 알았기 때문. 저녁 무렵 길게 늘어진 줄을 보고 한숨 쉴 필요가 없어졌다. 야호~~ 아사쿠사바시에서 신주쿠까지는 30분 정도가 걸렸다. 아키하바라에서 도쿄를 순환하는 야마노테(山手線)선으로 갈아타니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신주쿠(新宿). 고층 비즈니스 빌딩과 관공서가 밀집한 곳이라 아키하바라 덕후인 우리에겐 연이 없어야 할 터지만, 유랑인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시티헌터(City Hunter)’와 ‘엔젤하트(Angel Heart)’의 무대가 되는 곳이라 처음임에도 매일 보는 부산 대연동처럼 익숙했다. ‘신주쿠 역(新宿駅)’이라는 글자도 빌딩도 거리도…… 헌데 전언판(伝言板)이 설치된 ‘마이시티(My City)’ 빌딩은 보이지 않았다. 애니메이션과 현실은 다르긴 다른가 보다. (웃음) 주인공 ‘사에바 료’의 신주쿠 사랑이 유랑인에게도 옮겨온 듯. (^^)

신주쿠역 주변

신주쿠역 주변

잠시동안 사에바 료에 빙의 되었지만 이내 ‘여기서 뭘할까?’로 고민이 바뀌게 되었다. 애초에 계획따윈 없으니 신주쿠역 근처에 있는 ‘요도바시 카메라(ヨドバシカメラ)’로 향했다. 유랑인이 사랑하는 PC코너(パゾコンコーナー)는 쪼그라들다 시피 했지만, 노인용 안락의자 코너는 최고였다. 직원이 부담없이 앉아 보라길래 여행의 피로(……얼마나 돌아다녔다고)를 풀겸 앉았다.

요도바시 카메라 신주쿠 지점

요도바시 카메라 신주쿠 지점

안마버튼을 누르니 허리, 어깨, 다리, 종아리를 볼록한 왔다갔다하면서 눌러주는데, 처음엔 뭉친 데가 많아 아팠지만 이내 시원해 졌다. 몇 년 전만 해도 안마의자는 ‘돈 지랄’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먹으니 어르신들이 왜 이런 걸 사는지 알 것 같다. 동시에 ‘우리가 이렇게 늙었나?’ 라며 한탄하기도…….

직원은 잠시 우리 옆에 붙어있다 주 고객인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시자 “이럇사이마세~(어서 오세요!!)”라며 잽싸게 달려갔다. 그리고 우리는 아웃오브 안중(찬밥신세)이 되었다. 덕분에 한 시간동안 편안하게 안마를 받을 수 있었다.

안마의자에서 편안한 시간~

안마의자에서 편안한 시간~

민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우리에게 체면치레 따윈 없는 거나 마찬가지니……. 그 노인분들은 어떻게 되었냐고? 한 시간 동안 안마를 받으시더니 그 자리에서 하나 사 가시더라… 가격표를 보니 싼 것이 7만엔…실로 후덜덜하다.

요도바시 카메라를 나와 요기나 할 요량으로 ‘한 접시 95엔’이란 간판을 내건 초밥집으로 향했다. 주문하면 주방장이 만들어 주는 방식인데,  나중에 타카유키 카타오카씨를 만나면 많이 먹게 될 것 같아 적당하게 400엔어치를 먹었다.

참치(マクロ), 광어(ヒラメ), 참돔(真鯛/まだい) 같이 한 접시에 300엔을 넘어가는 비싼 것도 있었지만, 가난한 우리는 입 다물고 ‘계란(卵), 새우(エビ), 아보카도(アボガド)’ 당첨이다. 그래도 쌓여가는 접시를 보고 흐뭇함을 느꼈는데 그 이유는… ‘한 접시에 400엔이라 생각하고 1,600엔어치 먹은 거야~’ 라는 자기암시를 걸었기 때문이다.

Abodago Sushi

95엔짜리 아보가도 스시

Ebi sushi

95엔짜리 새우스시

초밥을 먹고 나오니 오후 네 시. 충분히 놀았다고 생각했는데(놀았는가) 약속까지는 세 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시간 지지리도 안가네그려….’

유랑인의 여행기를 처음부터 읽은 분은 알겠지만, 유랑인의 사전엔 ‘계획’따윈 없다. 고로 신주쿠도 저녁에 지인을 만나는 걸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었고 길가다 적당한 거 보이면 둘러보는 게 전부였다. 여행자의 정석을 따른다면 ‘도쿄도청 전망대’에 올라가 전망을 즐기지 ‘요도바시카메라’에서 한 시간이나 안마를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살짝 민망)

별 다방에 들어가 커피라도 마시며 시간을 보낼까 하는데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약속시각이 다 되어가니 ‘하타가야(幡ヶ谷)’로 올 수 있겠느냐는 것. 신주쿠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기에 전철로 이동했다.

신주쿠 역 주변은 고급 상업빌딩과 각종 관청이 모여있다면, 하타가야는 평온한 마을이었다. 번화가와 한적한 마을이 겨우 두 정거장 차이라니 갭(Gap)이 심해도 너무 심한 거 아닌가? 헌데 이곳이 성만이에겐 최고의 장소였나 보다. 유랑인은 자전거 여행과 큐슈여행을 통해 일본의 한적한 마을은 지겨울 정도로 많이 봐 왔기에 별 감흥이 없었는데, 번잡한 오사카를 1박 2일이란 빡빡한 일정으로 돌아다닌 게 일본여행의 전부인 성만이에겐 이것도 볼거리인 듯했다.

Small Village in Tokyo

신주쿠 인근 하타가야 마을

유랑인도 처음 일본여행을 할 때 그런 걸 보고 싶어, 일부러 그런 델 찾아다녔는데 성만이의 그런 모습을 보니 동병상련이다. 유랑인도 유명한 관광지보다는 이렇게 한적한 곳이 좋다.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으니까~~

평화로운 마을을 거닐다 보니 어느덧 약속시간이 되었다. 전화를 받고 하타가야 역으로 가니 타카유키 카타오카씨가 마중을 나왔다. 오랜만에 만나는 거라 주변의 시선엔 아랑곳 하지 않고 포웅을 하고 악수를 하였다. 이후 성만이를 그에게 소개했다. 그는 도쿄에 온 것을 환영한다며 홋카이도에서 세희씨도 날아오니 같이 만나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하기로 하고 그의 사무실에서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디자인 일을 하는 사람답게 사무실 한쪽에는 매킨토시가 자리를 잡고 있고, 작업이 한창이었는지 포토샵 레이어가 잔뜩 펼쳐져 있었다. 그의 사무실에선 신주쿠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는데 거기서 보는 야경은 도교도청에서 바라보는 것 못지않았다. 시티헌터에 등장하는 신주쿠의 야경과 비스름하다고 해야 하나? 아련함이 밀려왔다.

얼마 후, 세희님으로부터 신주쿠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작년 봄 이후로 일 년 만이라 무척 반가웠다. 우리는 타카유키 카타오카씨의 권유로 ‘오코노미야키 무한뷔페(お好み焼き食べ放題)’로 향했다. 딱 봐도 고급스러운 식당. 우리가 도쿄여행을 하며 먹은 거라곤 규동(牛丼屋)과 라면이 전부였기에(아키하바라에서 생각지도 못한 쇼핑을 한 탓에), 고급식당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설렘이었다. 뭐든지 셀프서비스였던 지금에 비하면, 신발을 벗으면 직원이 치워주고 옷도 정리해 주니…….

두 시간 동안 무제한으로 오코노미야키를 먹을 수 있다길래 우리는 신 나게 주문을 넣기 시작했다. 정말 다양한 종류의 오코노미야키를 맛보았는데 식당에서 먹던 흔한 종류도 있었지만 가쓰오부시(가다랑어포)나 일본의 불량식품이 가미된 독특한 맛을 내는 것도 있었다. 여행을 다녀온 지 7개월이 되는 시점에서 적는 여행기라 어떤 이름의 오코노미야키였는지는 까먹어 버렸지만 (이 글을 보시는 분 중에서 아시는 분이 있다면 댓글로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것이 대수랴.

Happy Dinner time in tokyo1

오코노미야키의 향연

오랜만에 재회한 우리은 그간 지내온 이야기며 엑스포 때 있었던 이야기 등 갖가지 이야기를 쏟아내었다. 세희님은 여수 엑스포가 끝나고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와서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그 활동은 한국의 문화를 일본에 널리 알리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타카유키 카타오카씨와 함께 나온 신문기사를 보여주었는데 그걸 보는 유랑인이 더 뿌듯했다. ^^

Happy dinnertime in tokyo2

좋은 사람과 함께해서 더 즐거웠던 저녁

그런 와중에도 일본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유랑인을 전격으로 도와준 에츠코 카와나베씨한테도 연락이 왔다. 쿄토가 아니라서 얼굴을 맞대고 할 순 없었지만,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만 들어도 반가웠다. 그렇게 오코노미야키를 먹으며 술도 한 두잔 오가면서 기분 좋은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앞으로 서로가 무엇을 하며 지낼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다음엔 언젠 만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확실하게 결정이 난 건 아니지만, 곧 있을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를 보러 한국을 찾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유랑인은 한국에 오거든 반드시 연락하라고 당부에 또 당부했다. 제대로 된 안내를 약속하겠다면서 말이지. 이렇게 다사다난했던 하루도 막을 내렸다. 내일은 일본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를 품고 잠자리에 들었다.

초고작성 2013.10.04 (최종수정 2013.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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