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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자전거 여행 #03] 무척이나 강렬했던, 큐슈의 여름 (다자이후 -> 야나가와)

일본에서 첫 야영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씻지 못한데다 밤새내린 이슬까지 더해지니 찝찝함이 극에 달했으니. 아무나 붙잡고 짜증 내고싶은 기분인데, 오늘도 씻지 못한다면 생각도 하기 싫다.

오늘은 반드시 물이 있는 곳에서 야영하기로 다짐하고 계속 남쪽으로1)구마모토(熊本) 방면 향했다. 짐을 꾸려 정자를 내려오니 출근시간이던데 사람은 많지 않았다. 보는 눈이 신경 쓰여 일찍 움직였지만 시골에서는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다자이후 정자에서 캠핑

다자이후 정자에서 맞이하는 아침 – 출발을 위해 텐트를 정리하고

다자이후에서 구마모토까지는 92km 남짓. 계획대로라면 오늘 구마모토에 도착해야 하지만 자전거 여행에 익숙치 않은 사촌 동생도 있으니, 구루메(久留米)에 가서 상황을 보고 더 갈 수 있으면 야나가와(柳川)까지 가는걸로 했다. 야나가와는 뱃놀이로 유명한 곳이지만 자전거길도 잘 되어 있다고 해 내심 기대된다.

구루메까지는 국도 3번만 따라가면 되는 간결한 코스로 길도 평평하고 차도 적으니 자연스럽게 속도가 붙었다. 반나절을 예상했던 구루메엔 두 시간 만에 도착했다.

다자이후에서 구루메를 이어주는 3번 국도

다자이후에서 구루메를 이어주는 3번 국도. 시원하게 뻗은 자전거 도로가 인상깊다.

다리너머 보이는 구루메 시내

다리너머 보이는 구루메 시내

구루메에선 마을 축제를 하고 있길래 잠시 페달을 멈추고 어울렸다. 우리같은 여행자 입장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로컬만의 축제니 놓치기 싫었던 것. 아이들이 돈통을 들고 다니는 걸 보니 마을 신사에서 주관하는 축제인 듯 했다. 처음에 우리를 많이 낯설어했던 아이들은 나중엔 V포즈까지 날려가며 사진 찍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쿠루메 마을축제

쿠루메 마을축제에서 아이들과 함께

축제를 보고 다시 야나가와로 향한다. 가로막는 것 하나 없는 탁 트인 지평선이 계속 이어지지만 한여름 자전거 여행에선 이것이 지옥이 된다. 지옥같은 열화에 물을 자주마시다 보니 물통은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고, 우리나라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자’도 찾기 어려웠으니까.

그러다 어느순간 하늘이 노래지더니 갑자기 휘청거며 도로에 넘어질 뻔 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위험할 것 같아 필사적으로 그늘을 찾아야 했다.

구루메에서 야나가와로 가는 길

시골의 정취가 느껴지는 구루메에서 야나가와로 가는 길

 

국내와 대만여행을 하면서 더위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큰 오산이었다. 그때는 봄이라 열사병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지금은 한여름이고 그것도 가장 더운  7월이니 충분히 대비 했어야 했다.

경험에 의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접 겪어보지 않은 상황(날씨 등)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의 여행기나 생활정보를 꼼꼼하게 보는 습관을 들여야 할 것 같다. 외국에서 언어 하나만 믿고 막무가내로 부딪쳐 보자는 식이 많았는데, 그 댓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으니….

다행히 마을어귀에 그늘진 공터가 있어 점심 먹을 겸 쉬어 갈 수 있었다. 얼음이 없으니 편의점에서 산 차가운 주스를 이마에 대어가며 열을 식히고, 스포츠 드링크로 부족해진 수분과 염분을 보충했다.

점심은 카레라이스와 100% 사과주스. 다자이후에서 야영하면서 먹었던 것과 똑같다. 달라진 거라면 매운맛이 약간 가미되고 양이 곱절로 늘었다는 거? 맛은 딱히 덧불일 말은 없다.

야나가와 가는 도중 점심

야나가와 가는 도중 해먹은 점심. 남자의 요리란 이런 것이다. 헤헤…

열화속을 바로 뚫고가긴 그러니 한숨자고 움직이기로 했다. 천천히 가더라도 체력을 온존해야 여행을 계속 할 수 있으니까. 사촌 동생은 눕자마자 완전히 곯아떨어지고 나 역시 얼마 못 가 잠에 들었다. 마을사람이 힐끔힐끔 쳐다보며 지나가는 느낌이 있었지만, 일일이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기에 패스. 이러면서 바깥생활에 점점 익숙해지나 보다.

얼마나 오래 잤는지 벌써 해가 뉘엇뉘엇 지려했다. GPS를 보니 야나가와까지 30km 정도가 남았는데, 광속으로 페달질하면  어찌어찌 갈 수 있을 것 같다. 한 시간 정도 달리니 야나가와 입구에 도착하는데 성공했다.

야나가와 입구

야나가와 입구

도착하자마자 바로 잠자리를 찾아 나섰다. 파출소(交番)에서 물 한 잔 얻어마시며, 텐트 치고 잘만한 곳을 물어보니, 구마모토 방향으로 가다보면 무료 족욕장이 있는데 거기서 치면 된다고 했다.

야나가와에서 야영할 수 있는 곳을 알아봐 주신 파출소(코방) 순경 아저씨

야나가와에서 야영할 수 있는 곳을 알아봐 주신 파출소(코방) 순경 아저씨

족욕장 가는 길은 야나가와 뱃놀이 코스와 겹치기도 해서 모처럼 관광하는 기분으로 내려갔다. 버드나무와 아기자기한 집들이 어우러진게 한 폭의 그림이다. 나룻배를 타고 훑으면 최고의 신선놀음이겠지? (근데 비싸다….)

야나가와 뱃놀이 코스

야나가와 뱃놀이 코스

야나가와 뱃놀이 코스

종점에선 뱃사공을 만났다. 지금까지 수많은 한국인 여행객을 만났지만, 자전거를 타고 온 한국인은 처음이라며 놀라워했다. 더운데 고생한다며 시원한 빙수(かき氷)와 과자 몇 봉지를 주셨는데, 막판 스퍼트를 내느라 퍼지기 직전이었는데 그의 호의는 무척 고마웠다. 빙수를 다 먹으니 무료 족욕장이 있는 공원으로 안내 해 주었다.

야나가와 뱃놀이 뱃사공과 함께

야나가와 뱃놀이 뱃사공과 함께

너무 더워서 짜증나고 힘들기도 했지만 먼저 손을 먼저 내밀어 주는 사람이 있어서 웃으면서 마무리 할 수 있는 하루였다. 내일은 구마모토로 가서 페이스북으로 뵈었던 재일교포 송미경 님을 만날 계획이다. 오프라인상에선 초면이라 어떤 이야기가 오갈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야영지 – 야나가와 카라타치 문인 족욕장(柳川からたち文人の足湯)

야나가와 카라타치 족욕장

야나가와 카라타치 족욕장에서 캠핑을~

순경 아저씨와 뱃사공이 안내해준 야영지는 다자이후의 야영지와는 차원이 다른 곳이었다. 2)이 말은 앞으로 자주 사용하게 된다. 왜 그런지는 여행기를 보면 알 수 있음 뜨거운 온천수가 나오는 족욕장에서 무료로 족욕을 할 수 있고, 공중 화장실이 있어 샤워(?)와 빨래는 물론 밥해 먹을 물도 쉽게 조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공공시설이라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 눈치가 보이는 게 흠이지만…. 아무렴 어떤가.

전체평가(별 5개 만점) : ★★★★

이동 경로 – 다자이후 텐만구(太宰府天満具), 구루메(久留米), 야나가와(柳川)

다자이후에서 야나가와 까지


   [ + ]

1. 구마모토(熊本) 방면
2. 이 말은 앞으로 자주 사용하게 된다. 왜 그런지는 여행기를 보면 알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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