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자전거 여행 #01] 소년의 결심……

유랑인이 지전거 여행을 결심한건 몇 년 전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짬지님이 쓴 50일간의 일본 자전거 여행기를 읽으면서부터다. 돈이 없어 주변 사람들로부터 지원을 받아 시작된 그의 여행은 중간중간 시련을 맞지만, 따스한 사람들의 도움으로 ‘완주’라는 기쁨으로 마무리 된다.

그의 여행기를 통해 사람의 따스함이 어떤건지 간접적으로 나마 느끼게 되었고, 어린시절 왕따로 마음의 문을 닫고 지내던 유랑인에겐 커다란 자극이 되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중고 MTB를 구했고, 10년전 자전거 타던걸 되새기며 무작정 경주를 향해 달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 왜 그랬는지는 의문이지만 정체되어 있던 유랑인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에 희열을 느껴서 일지도.

10년만의 재회. 아팔란치아 팀콤프 7.2

운동을 전혀 안한 상태에서 20km를 갑자기 달리는건 쉬운게 아니었다. 평길이엇지만 얼마안가 쳐지기 시작했고 ‘경주따윈 버스로 가면 꼴랑 2-30분 인데, 왜 이짓을 해서 생고생’이라는 회의감 마저 들었지만 주저앉긴 싫어 거친숨을 쉬며 경주역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하지만 급격히 달궈진 냄비는 식는것도 금방이라더니 여기서 끝이었다. 힘들기도 하고 귀차니즘까지 더해지면서 점점 자전거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고 얼마 안 가 되팔아 버렸다. 만일, 유랑인이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랑인은 다른건 몰라도 여행은 꾸준히 하려고 노력했고 ‘내일로 여행’을 하면서 다시금 ‘자전거 여행’에 대한 뽐뿌를 느끼게 된다. 보성과 단양을 둘러보는데 교통이 불편해 움직이기 어려웠는데(버스가 2~3시간에 한대), ‘자전거가 있었음 시골길 구경하며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을텐데……’라며 아쉬워 하게 된 것. 그리고 유랑인은 다사 자전거를 질러 버렸다.

애마에 얽힌 사연

처음엔 다혼 스피드 TR을 사려고 했었다. 전국일주는 물론이요 세계일주까지 고려해서 선택한 모델이니까. 그런데 국내판매가 자그마치 120만원?!! 당시만 해도 공익인지라 육두문자가 절로 나오는 금액이었다. ‘100에서 좀 끊어주지…. $@#$@$@%$#….’ 그래서, 유랑인의 절친 Google님께 검색을 의뢰하니 500달러짜리 물건을 찾아주신다. 2008년식이지만^^;;. 외국은 메일오더가 일반적이니, 별 의심없이 구입의사가 적힌 이메일을 쇼핑몰에 보냈다. 며칠 후 ‘카드결제 시스템이 점검중이니 미안하지만 Western Union으로 보내주세용~’라는 답변이 날아왔다. 그래서 배송비 포함 550달러를 보냈다.

Western Union으로 돈을 보낸 영수증..OTL

메일이 왔다. 영국세관에서 일정한 수수료를 내지않으면 물건을 통관시켜주지 않는다면서 추가금 350달러를 더 내라는 내용. 관세는 수입국의 세관에서 부과하는건데? 이상했지만, 한국세관 수수료가 포함되고 자전거를 2대 보내준다는 말에 홀라당 넘어가 동사무소의 친한형까지 끌여들여 돈을 보냈다.

며칠 후 또 돈을 보내란다. 업체주소를 따다가 구글에 붙여넣으니 업체명과 번듯한 건물 사진이 나왔다. 의심은 일축되었고 울며 겨자먹기로 친구한테 돈까지 빌려가며 350달러를 보냈다. 또다시 돈내라는 X같은 메일이 날아왔다. 더 상세하게 알아보니 오토바이 판매처를 사칭한 사기 쇼핑몰. 눈치챘을땐 수천달러는 날아갔고~에헤야 디야……경찰서에 가니 ‘인터폴은 5엌….. 밑으론 안움직이니 포기해’라는 형사의 말만 돌아왔다. 영국경찰과 사칭당한 업체에 도움을 청하는 메일을 보내봤으나 잘게잘게 씹어드시더라.(-_-)

기사회생

동사무소 형과 친구에게 80만원을 물어주고 거지생활을 시작했다……간식도 못사먹고, 외식도 못하고, 고기도 못먹고, 오로지 풀과 밥으로 연명하며 ‘언젠간 네놈에게 한국고추의 매운맛을 보여주겠어’라는 얼토당토 않은 망상을 하며 2개월을 견디다 블로그 마케팅업무를 처리해주고 받은 보수로 다시 자전거를 샀다.

모델은 다혼 스피드 P8. 가격은 대략 60만원(노옵션). 친구들은 나에게 ‘독한새끼’……라고 했다. 처음엔 이녀석에게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몸체만 스피드 TR과 같을 뿐 기어는 8단이었기 때문이다. 폴딩이란 장점만 밀고 열차에 싣고 다니다 적당한 도시에 내려 시티투어라도 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다혼 스피드  P8(Dahon Speed P8) 녀석은 의외로 물건이었다.

울산 포항 라이딩

운동이라곤 눈꼽만큼도 안했던 유랑인이 첫 라이딩때 집에서 태화강까지 왕복 20km를 가볍게 달리더니 어느샌가 울산-경주-포항 자전거 여행까지 무사히 마치면서 ‘해외 자전거 여행’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왜 하필 외국인가?

내가 왕따를 당했던 이유 중 하나가 언어장애이다. 학창시절 놀림감의 대상이었던 나는 점점 위축되었고 우리나라 말을 쓴다는 것 자체가 압박이었다. 외국을 선택한건 막연한 동경도 있지만 언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다고 해서 비웃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마음의 편함? ㅎㅎㅎ

새로운 다짐

4년전 동남아 3개국을 돌아보는걸 시작으로, 여러나라를 여행했지만 그렇게 큰 감흥을 받진 못했다. 내가 소극적이었던 부분도 있지만 당시엔 여행을 하면서 목표같은건 없었다. 그저 현실도피 였으니…그래서인지 여행을 다녀왔어도 쓸 게 없었다.

이번엔 다르다. ‘완주와 소통’이라는 제대로 된 목표를 세웠다. 이번에야 말로 못해본걸 다 해보리라. 9년전 그가 그랬던 것처럼 ‘소통’으로 사람의 따스함을 느껴고, ‘완주’를 통해 내 속에 잠재된 더 큰 가능성을 열어보리라.

길고 굵게 하고 오련다. 잠깐하고 돌아오면 ‘잘 갔다왔어?’란 허무한 인사로 끝나지만, 오래다녀오면 ‘대단하네!’같은 기분좋은 인사를 받을 수 있으니까. 헤헤

초고작성 : 2011.09.27 / 1차 수정 : 2013.08.11

댓글 11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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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분방하고 아름다운 맘을 지닌 재중씨께 박수를 보내요~ㅎㅎ

드디어 이 글에도 댓글이 ㅠㅠ 아 감격입니당.ㅎㅎㅎ 대만여행기도 힘차게 연재해 나가겠습니다. 우선 일본여행기부터 마무리 짓구요.ㅎ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다혼 스피드 TR을 사려고 마음 먹은 자전거 초보랍니다. 사기 당하셨을 때 얼마나 힘드셨을지.. ㅠ.ㅠ

로드는 처음부터 별 감흥이 없었고 하이브리드와 일반 미벨은 좋은 추억 정도 였네요.
그런데 다혼 스피드 TR는 제가 생각하는 철학하고 완벽하게 일치해서
저도 학생이라 무리지만 지를 예정입니다.
비슷한 생각을 먼저 하셨던 분을 만나니 반갑습니다.
여행기 잘 볼께요 ^^

얼른 다음편을 연재해야겠군요. 제 여행기를 기다리는 분들이 많은데 저의 귀차니즘으로 맨날 뒷전으로 밀리고 있네요..ㅎㅎ 혹시 여행에 대해 궁금하신점이 있다면 언제든지 댓글로 알려주세요.

아… 이글 보니까… 제 스피드TR에게 미안해지네요…
재밌는 글 잘 보고 갑니다…

다음편도 조속히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ㅋㅋ 제가 사고싶었던 TR을 갖고 계시니 자전거와 함께 좋은추억 많이 만드세요.^^;; 고맙습니다.

유랑인 님도 여행 많이 좋아하시는 모양이네요.
축하 드립니다. 앞으로 자전거 로 이왕이면 세상 끝가지 여행 하시길 바랍니다.

2014년에 남기신 댓글을 이제 확인했네요. 응원의 댓글 감사합니다 !!

저도 자전거 문제가 컸어요. Surly 자전거를 구매하고 나 홀로 전지훈련을 갔는대 인천 어딘가에서 사고로 자전거를 잃게 되었어요. 그리고 여러달 고민하고 괴로워하다가 COCOROCO 라는 한국제 접이식 자전거를 동대문 중고상에게 샀어요. 그런데 새 가격으로 눈탱이 맞고 ㅎㅎㅎ
그 자전거로 8박 9일동안 시운전해봤어요. 완장하고선 서울서 천안 광주 나주 목포 제주도 완도 이렇게 갔어요. 배도이용하고 버스도 이용하고…
그런데 가능하겠더라구요.
님의 자전거 사기 사건은 맨처음 웃다가 중간쯤 읽으니 내가 다 화가 나드라구요. 그래도 다혼으로 여행을 안전히 다녀오셨으니 멋집니다.

자전거 여행을 시작하기까지 정말 큰 시련이 있었지만 그런만큼 뿌듯함은 배가 되는 것 같아요. MJKIM 님도 저랑 비슷한 시련을 겪으셨으니 그 만큼 좋은 추억 배로 만드실 수 있을거에요!

유랑인님의 저전거에대한 큰 시련에는 못 미치지요. ㅎㅎ 즐거운 여행이 되길 저 스스로도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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