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전거 여행 #06] 아소산, 너를 정복해 주마!! (오즈마을 -> 아소)

일본 자전거 여행을 시작한 지 5일째 되는 아침. 지난날 그렇게 고생했음에도 본능에 따라 일찍 눈을 뜨게 된다.

여행을 계속할지 포기할지 정말 많이 고민했다. 같은 일이 또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데다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없는 첩첩산중에서 폭우와 펑크를 만나 꼼짝달싹 못하고 고립될 뻔했으니까. 하지만 여기서 포기해 버리면 ‘여기까지밖에 안 되는 건가?’라며 스스로 한계를 만드는 것 같아 싫었고, 오랫동안 꿈꿔왔던 여행을 이렇게 날려버리고 싶지 않았다.

대만 자전거 일주를 할 때 지우펀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지만(펑크가 나지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아서 대만일주를 성공적으로 마쳤던 적도 있었으니 그때를 떠올리며 좀만 더 힘내기로 했다.

오늘은 아소산 정상까지 올라가야 하니, 반값 땡처리가 아닌 고기 팍팍 들어간 따끈따근한 도시락으로 배를 채웠다. 내가 좋아하는 100% 과즙이 함유된 사과 주스와 디저트도 잊지 않고 곁들였다.

혹시 모르니 도시락을 사면서 편의점 직원에게 날씨를 물어봤는데, 구름이 많을 뿐 당분간 비 소식은 없다고 했다. 강수확률은 2~30%로 이 정도면 비가 오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오늘 내일 큐슈지방 날씨는 흐림.
오늘 내일 큐슈지방 날씨는 흐림.

머물렀던 자리를 정리하고 읍내를 벗어나 아소산(阿蘇山) 으로 향했다. 마을을 나오면서 알았지만 나와 사촌동생이 머물렀던 자리는 히고오즈(肥後大津) 역이 바로 보이는 마을 중심가였던 것. 출근/등교길에 오른 많은 사람이 텐트를 보았을 것이다. 텐트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진 안 봐도 비디오지만, 대로변에 텐트 칠 일도 있을 테니 철판까는 연습했다 치고 태연한척 했다.

텐트 친 자리는 깨끗이 정리
머문 자리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출발~!

히고오즈 역(肥後大津駅) 앞의 수많은 자전거. 면 정도의 작은 마을에 이정도로 자전거 타는 사람이 많다는 건 정말 부러웠다.

히고오즈역 자전거 주차장
면 정도의 마을에 세워진 자전거. 자전거 타는 사람이 많아서 부러웠다.

오즈마을을 나오니 산이 슬금슬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아소산 정상까지 오르막이 계속된다.

오즈마을 외각
오즈마을을 벗어나자 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경사도 6%. 298번 도로와 갈리기 전까지는 무난한 오르막이 계속된다.

아소시 입구
아소시에 들어설 때까진 무난했던 오르막길

나와 사촌동생은 아소시내를 거치지 않고 298번 지방도로 아소산 정상으로 바로 치고 올라갔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되는지라 얼마 못 가 퍼지고 말았다. 이런 길이 몇 시간째 계속 이어지는데 몸뿐이면 몰라도 텐트와 침낭을 짊어지고 가니 죽을 맛이다. 던져버리고 싶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298번 도로 오르막길
298번 도로부터 경사가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물론 진짜로 그랬다간 강제 여행종료 예약이니 간식을 먹어가며 쉬엄쉬엄 올라갔다. 아소산에서 방목한 젖소 우유로 만든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녹차 맛이 강할 뿐 특별한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맛이 없는 건 아니어서 당분과 에너지는 보충을 위해 몇 개를 집어 먹었다.

아소산에서 방목한 젖소 우유로 만든 녹차 아이스크림
아소산에서 방목한 젖소 우유로 만든 녹차 아이스크림

정상엔 언제쯤 갈 수 있을까? 다섯 시간째 올라가고 있지만 보이는 건 끝없는 오르막. 아소산도 우리의 고생을 아는지 오르면 오를수록 멋진 경치를 보여 주었다.

올라도 올라도 끝이 없는 오르막
올라도 올라도 끝 없는 오르막

드디어 정상을 가리키는 이정표와 만났지만 거리가 나와있지 않은 걸 보니 한참 가야하나 보다. 해발 1,500m가 넘는 산인데 쉽게 정복당하면 그게 이상한 거겠지? 올라가면서 온 몸은 땀범벅이 되었는데, 누가 보면 옷 입고 샤워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아소산 정상을 가리키는 이정표
아소산 정상을 가리키는 이정표
Mt.Aso 아소산 阿蘇山
이정표를 지나서도 한참을 올랐다. 온 몸은 땀범벅이다.

그렇게 가니 로프웨이 승강장과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였다. 로프웨이(케이블카)를 타고 편하게 올라갈 수도 있지만 유종의 미를 위해 마지막까지 자전거로 올랐다.

아소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입구
아소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입구

정상에 있는 분화구에선 약한 유황 가스가 흘러나오고 있으니 심신이 약한 사람은 올라가지 말라는 내용이었는데, 우리는 해당 사항이 아니어서 계속 올라갔다.

아소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써진 경고문
아소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써진 경고문

아소산 정상(분화구)으로 향하는 마지막 길! 페달에 더욱 힘이 들어가지만 한참 가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실제론 그리 길지는 않음)

아소산 정상으로 가는 라스트 스퍼트
아소산 정상으로 가는 라스트 스퍼트

드디어 아소산 정상(아소산 화구:분화구)에 도착했다. 오전 9시에 오즈마을을 출발 오후 4시에 도착했으니 8시간 정도 산을 탄 셈이다. 태어나서 이렇게 오랫동안 산을 탄 적이 없었고, 자전거로는 더더욱 없었다. 자동차 같은 편한 탈것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이룩해낸 성과라 무척 뿌듯했다. 이번 일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아소산 정상에서 인증샷
아소산 정상에서 인증샷

로프웨이(케이블카) 타는 곳 앞에서 한국인 여행객을 다시 만났다. 산을 오를 때 태극기를 보고 우리를 응원해 주신 분인데,  힘들었을 텐데 든든하게 먹으라며 떡과 간식거리를 챙겨주셨다. 새삼스럽지만 고국의 정이 느껴졌다. 사진을 찍는데 부끄러워하셔서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

아소산 정상에서 만난 우리나라 패키지 여행객
아소산 정상에서 만난 우리나라 패키지 여행객

정상에는 올라왔지만 올라오는 데 시간을 엄청 소모했기에 느긋하게 둘러볼 여유는 없었다. 패키지 여행객보다 1시간 정도 여유가 있는 게 전부라 슬슬 하산준비를 해야 했다.

내려오는 길 구름이 걷히면서 아소산의 참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규모의 광활함도 있지만, 자연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건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차에 탄 사람도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풍광을 담아내느라 여념이 없어 보였다. 시간이 촉박했지만 흔치 않은 기회라 우리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8시간 동안 산을 탔으니 오늘은 그럴싸한 숙소를 이용해 보기로 했다. 111번 도로를 따라 아소시 방면으로 내려가니 아소유스호스텔(阿蘇ユースホステル)이라는 숙소가 보였다. 산 중턱에 있었지만 1박에 2,000엔이라고 써진 문구에 현혹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문을 두드렸다. 평일이라 손님이 적은지 침대 6개가 들어간 도미토리룸 하나를 통째로 쓰게 해주었다.

아소산 중턱에 있는 유스호스텔
아소산 중턱에 있는 유스호스텔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잠자리는 야영(노숙)에 비하면 두 말 할 것도 없이 천국, 푹신푹신한 침대, 자유로운 충전, 쾌적한 샤워 다 좋았지만, 먹거리를 조달하는 게 문제였다. 주방이 있었지만, 개인이 가진 재료로 만들어 먹는 방식이라 쌀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었다.

호스텔이 기본적인 음식재료는 있을 줄 알았던 나로선 뜻밖의 난관. 호스텔 주인에게 물어보니 도시락집이 있긴 한데 기슭까지 내려가야 한다고 했다. 정말이지 울고 싶어진다. 내려가는 건 그렇다 쳐도 올라오는 건? 그렇다고 굶을 순 없으니 자전거를 챙겨 기슭으로 내려갔다.

도시락집에서 고기가 듬뿍 들어간 비싼 녀석을 집었다. 1,000엔(2011년 당시 환율 15,000원)이 홀라당 날아가는 게 두렵긴 했지만, 모처럼의 ‘특별한’ 날이니 간식에 음료수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호스텔로 돌아왔다.

이제 할 일은 깔끔하게 샤워와 빨래를 하고, 다다미방에 앉아 도시락과 간식을 먹는 것. 생각만 해도 행복하구나~!!

아소산 다녀온 기념으로 저녁도 푸짐하게
아소산 다녀온 기념으로 저녁도 푸짐하게
아소산 다녀온 기념으로 저녁도 푸짐하게
간식을 빼먹을 순 없지

숙박지 : 아소 유스호스텔(阿蘇ユースホステル)

전체평가(별 5개 만점) : ★★★★★

천국에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단, 먹을 것은 미리 준비해서 가자.

이동경로 : 오즈마을(菊池郡 : 大須町) -> 아소산(阿蘇山)

Japan_bicycle_journey_kikuchigun_asosan
일본 자전거 여행 5일차. 키쿠치군 오즈마을 -> 아소산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