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시코쿠에 도착한 건 한밤중이었다. 가로등 몇 개 외엔 다 꺼진 시코쿠의 관문 미사키는 기대와 다르게 을씨년스럽고, 오래 전 만들어진 출입금지 팻말은 그런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오래 머물고 싶지 않아 야영지인 이노우라 캠핑장(井野浦キャンプ場)으로 서둘렀다. 캠핑장으로 가는 길은 차가 적은지 가로등이 하나도 없다. 과속하는 차를 만난다면 목숨이 남아나지 않겠지….

이노우라 캠핑장. 피서철인데도 손님은 없고 적막함과 잔잔한 파도 소리만 흐르니 자연스레 하늘로 눈이간다. 수 많은 별이 수놓은 밤하늘은 오늘따라 무척 아름답게 느껴진다. 제대로 된 카메라만 있었으면 멋지게 한 장 담아낼 수 있겠지만, 가진 거라곤 아이폰 뿐이니 아쉬운대로 스케치 앱으로 끙끙거렸다. 그림실력이고 뭐고 없이 즉흥적으로 그린거라 꼬맹이도 그릴 수 있는 그림이 탄생했다.

부드러운 모래사장 위에 텐트를 쳐서 그런지 야영 치고는 편하게 잤다. 백사장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기지개를 켜며 하루를 시작한다. 빨래를 말린다는 이유로 드러누워 보고, 뒹굴거리는 등 피서온 기분을 만끽해보려고 하지만 사촌동생 학교문제로 더 이상 빈둥거릴 수 없었다.


캠핑장을 떠날 무렵 일본인 가족이 피서를 오던데 얼마나 부럽던지….

오늘의 목적지는 마쓰야마(松山). 일본에서 시골소리 듣는 시코쿠에서 그나마 번화한 도시 중 하나로 마쓰야마 온천가(松山温泉街)와 도시 곳곳에 산재한 절이 유명하다고 한다.
마쓰야마로 가려면 큐슈 방향으로 뻗은 니시우와 반도를 가로질러 오즈(大洲)로 들어가야 하는데, 산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데다 터널이 많아 만만한 길은 아니었다. 오르막길은 바닷가 보면서 달리는 거라 기분전환은 되지만….
터널만큼은 네버! 네버! 네버! 절대 아니다. 일본 운전자들이 과속을 심하게 하지 않고 우리가 보일 땐 속도를 줄이는 등 배려는 하지만, 대만이나 우리나라 자전거 여행에서 겪었던 트라우마1)대만과 국내 자전거 여행을 할때 터널을 지날때가 많았는데, 화물차나 버스가 속도를 늦추지 않고 지나가는 게 가장 무서웠다. 어떤 차들은 크락션을 세게 울리기도 했으니….는 쉽게 떨쳐지지 않으니 터널(トンネル)의 터(ト)자만 봐도 가슴이 쪼그라 든다.

라이트급 500m 미들급 700~1km 헤비급 2km. 다들 한 길이 하시니 통과 전 심호흡은 필수다.

달리다 보니 어느덧 니시우와 반도를 벗어나 오즈(大洲)에 들어섰다. 여기서 생각지도 못한 곳을 지나는데, 바로 ‘이웃집 토토로(隣のトトロ)’의 배경 중 하나였던 나가하마 마을(長浜町). 고양이 버스가 토토로를 태웠던 동산이 있는 마을로, 생각지도 못한곳에 왔다는 기쁨에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2)이 블로그의 쥔장 유랑인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좋아한다. 오늘의 오르막과 터널은 이걸 보여주기 위해서였던가? (웃음)

나가하마 마을엔 순례자를 위한 쉼터(おいで屋)도 있어 머지않아 그들을 만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컸다. 토토로도 그렇지만 여행자를 위한 배려가 인상깊었던 마을. 여기서 묵어가면 좋겠다 싶었지만 편의점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으니3)밥을 굶을 순 없으니 마쓰야마를 향해 페달을 밟았다.


마쓰야마까지 20km를 남겨둔 이요까지 왔다. 마음만 먹으면 마쓰야마까지 갔겠지만, 텐트 치기 딱 좋은 자리가 있으니 그냥 눌러 앉았다. 마쓰야마 시내에서 텐트 칠 자리 찾는것도 일이니까.
야영지 : 시모나다우체국(下灘郵便局) 인근 백사장
전체평가(별 5개 만점) : ★★★★★
백사장 인근에 화장실이 있어 씻기 편하며 바닥이 넓고 평평해 밥해먹기에도 좋음. 모기도 별로없다.
이동경로 : 니시우와 (西宇和) -> 오즈(大洲) -> 이요(伊予)

댓글 2 개
댓글 쓰러가기 →차로 달려도 인상에 남는 길이었습니다. 미사키 가는길… http://jinto.pe.kr/1806 그길을 자전거로 달리셨군요. 반가운 마음에 댓글 남깁니다.
일본 여행 중 가장 멋진길을 꼽으라면 이마바리와 오노미치를 잇는 세토내해(瀬戸内海)길과 미사키 반도입니다. 그 길을 여행하셨다니 반갑네요~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