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마음을 잡았음에도 불구, 거세지는 비 바람에 자전거가 나빠지면서 내일도 날씨가 이러면 여행을 접기로 했는데 다행히 구름이 걷히고 있었다. 기쁜 마음에 당장 이라도 지우펀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우선 물범벅이 된 옷과 텐트를 말리고 간단하게 자전거를 정비했다. 체인에 묻은 모래와 먼지를 털어내고 프레임을 닦았다.
‘그래, 이 상태만 계속 되면 되는거야.’……
그렇게 갈 준비를 하는데 차 한대가 서더니 아저씨 한 분이 유랑인에게 바나나 한 뭉치를 권한다. 얼떨결에 받고 서 있는데 ‘먹고힘내!’ 라며 유랑인을 격려해 주었다. 대만 사람들은 겉보긴 무뚝뚝해도 말을 걸면 살갑게 대해주니 너무 좋다. 우리나라로 치면 경상도 사람과 비슷한 듯.m비에는 이골이 난지라 아저씨께 “샤유이? 샤유이?”(비와요?)라고 물었다. 비는 며칠동안 안 올 것이며 날씨가 화창하니 드라이브 하기 좋으니 신나게 달리라고 하신다. Oh~Yeah~!!! 당장이라도 날아 갈 것 같은 기분이다.
‘자, 남쪽으로 가 볼까?’
지우펀에서 해안도로까진 내리막이라 신나게 내려갈 수 있었다. 며칠동안 습기에 찌든 자전거가 걱정되긴 했지만 당장 굴러가는덴 문제 없으니 안심.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이란에 도착하면 체인을 점검하기로 했다. 이란과 가까워 질 수록 아름답던 해안도로는 어느샌가 끝나버리고 끊임없는 산길(우라질……)이 이어진다. 이 도로는 화물차와 터널이 많아 위험하기까지 했다. 과적차량이 많은지 군데군데 노면이 파손돼 보수해 놓은 흔적이 많았으며 갓길마저 실종인 곳이 많아 똥꼬에 힘주고 달렸다.
우리나라나 대만이나 화물차 운전하는 사람은 하나같이 운전매너가 없는 것 같다. 굉음을 울리며 지나가는건 기본이고 심심하면 크락션을 울려대니 어떨 땐 놀라서 넘어질 뻔 했다. 특히 터널에서의 그 크락션 소리는….. 지금도 머리에서 엉엉거린다.
그렇게 산을 넘으면서 이란으로 향하는데 ‘바이크 웨이’가 유랑인의 시선을 끌었다. 이거아님 푸롱(Fulong)은 그저 거쳐가는 도시 중 하나가 되었을텐데 말이지.^^ 푸롱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방문자 센터에 들려 보았다. 들어가 보니 ‘자전거 여행자의 천국 푸롱! 해안선을 달리며 태평양의 아름다움을 만끽하십시오’ 라는 슬로건으로 홍보하던데 그럴싸해 보였다. 거기에 보답하고자 이란으로 가는 여정을 미루고 푸롱 둘러보기 급 결정.
현수교와 오래된 터널을 둘러보기로 했다. 방문자 센터를 20분을 달려 현수교 입구에 도착했다. 실제로 본 현수교는 아담했지만 LA에 있는 베이브릿지(Bay Bridge) 못지 않았다. 실제로 LA에 가 본적은 없지만 대리만족 하기엔 충분하다고 할까나. 언제 한번 미국도 자전거로 달려보고 싶다.^^
현수교를 건너니 꽤 그럴싸한 캠핑장이 나왔다. 취사시설, 화장실, 충전 플러그, 샤워장이 갖춰져 있었는데 진작에 여기를 알았더라면 지우펀 팔각성에서 개들과 동침은 안해도 되었을텐데… 좋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억울하다…(-_-.) 여기서 아이폰과 보조 배터리 충전을 하면서 낮잠을 즐겼다. ‘하룻 밤 여기서 묵어갈까…?’ 텐트치고 자기엔 딱 좋은 곳이라서 고민했지만 이른 오후 1시라 아쉬움을 뒤로 했다.^^
이어서 오래된 터널을 보러갔다. 길치는 아닌데 방향치라 가는 길이 만만치가 않았다. 이정표가 중간에 끊어져 여러 번 헤마다 푸롱역에서 겨우 방향을 잡았다. 옛된 농촌마을을 지나니 터널입구가 보였다. 터널에서는 대만식 오케스트라 음악을 틀어주는데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메아리 치는 오케스트라 음악과 시원한 냉기는 황홀함 그 자체였다. 그나저나 대만관광청은 이런델 소개 안하고 뭘 하는거지? 하마터면 이렇게 좋은곳을 그냥 지나칠 뻔 했잖소.
오래된 터널은 도시와 도시의 경계를 표시하는 이정표가 있을 정도로 그 길이가 길었는데 체감상 일본의 시모노세키(下関)와 키타큐슈(北九州)를 이어주는 칸몬터널(関門トンネル)보다 더 긴 것 같다. 걸어 다니는 사람도 있어 속도를 줄이긴 했지만 자전거로 20분을 달려 반대편으로 나올 수 있었으니까. ^^
오래 된 터널로 가려는 분들을 위한 팁 : 푸롱(fulong)역 앞에 난길을 쭉 따라가면 된다. 샛길로 빠지면 헤메기 쉬우니 그러지 말자.
오래된 터널을 나오니 2번 국도로 올라탈 수 있는 길이 있어 편했다. 날이 어두워지길래 이란은 다음으로 미루고 터우청(頭城/Toucheng township)의 해수욕장 캠핑장에서 하루 묵어가기로 했다. 가던 중 배터리 방전으로 아이폰이 꺼지면서 GPS가 먹통되는 바람에 경찰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어찌어찌 도착할 수 있었다. 캠핑장은 도시외곽에 있어서 그런지 조용했다.
화장실 앞에 사람이 있길래 캠핑을 해도 되는지 물으니 공원 관리인에게 사용료를 지불하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안내센터는 셔터가 내려가 있어 나중에 사람오면 돈을 내기로 하고 텐트부터 폈다. 역시 캠핑장답게 괘적하다. 샤워실에 들어가니 무려 온수가 나왔다!! 얼마만에 해 보는 따뜻한 샤워인가…… 지우펀에서의 피로 + 라이딩 피로가 한 방에 풀리는 느낌이다. 지우펀에서 고생했으니 여기서 편히 쉬란 의미일지도.^^
야영지 – 터우청 해수욕장(頭城海水浴場)
전체평가(별 5개 만점) : ★★★★★
원래 캠핑장으로 설계된 곳이라 야영을 위한 시설이 매우 잘 되어있다. 따뜻한 온수샤워에 충전에… 안되는거 없다!! 아쉽게도 캠핑 전용 플러그는 보이지 않았지만 이건 뭐 화장실에서 해결했으니. 관련 홈페이지를 하나 링크했다. <터우청군 해수욕장>
댓글 4 개
댓글 쓰러가기 →안녕하세요. 저도 작년에 캠핑을 하면서 대만 자전거 환도를 하고 와서 그런지 코스는 조금 다르지만 읽는 내내 기분이 좋네요ㅋㅋ 잊고 있다가 요즘에 블로그에 일기처럼 여행기 쓰고 있는데 유랑인 님 여행기 보니깐 그 때 그 느낌이 조금은 새록새록해서 일기 쓰기 더 좋네요. 잘 읽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김민호님. 저도 김민호님 여행기 보면서 삘 받아서 열심히 다음편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도 대만여행을 가긴 하지만 자전거 여행은 드문 것 같아요. 그래서 민호님의 여행기가 더욱 반갑게 느껴지네요. 여행기 연재중이신 것 같은데 다음편도 기대할게요!!
화물차 운전저 너무 욕하지 마세요^^
저도 처음에 몰랐을 때는 겁도 나고..무섭고….화가 나고 그랬지만…
TV에 화물차운전자의 생활인가..뭔 가를 보고 나서는 생각이 좀 바꼈습니다..
저 사람들은 시간과 무게와의 싸움입니다…..
화물차 때문에 큰 사고가 날 뻔 했던걸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한지라..ㅎㅎㅎ
욕을 안하기도 그렇고..그렇다고 대놓고 하기도 그렇고…참으로 난감하네여..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