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고 있는데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어보니 대만 사람이 늦었으니(?) 슬슬 출발 하는게 어떻겠냐고 한다. 숙소이용이 손가락에 꼽을 유랑인으로선 조금 더 자고 싶었지만 야영이라면 출발 하고도 남을 시간이라 짐을 꾸리고 아침을 챙겨먹은 후 타이동으로 향하는 여정에 올랐다.
타이동은 베이난 바로 아래여서 금방 도착 할 수 있었는데 타이동으로 진입하는 입구에서 익숙한 한국말이 들려왔다. ‘잘못 들은건가?’ 그냥 내려가는데 점점 커지는 목소리.
“저기요!!~ 저기요!! ~잠깐만요~!!!”
그제서야 뒤를 돌어보니 자전거를 탄 여자분이 열심히 쫒아오고 있었다. 황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예류(야류) 이후로 한국말을 들어보지 못했던터라 무척 반가웠는데 그녀도 한국사람 보는게 생각만큼 쉬운게 아니라며 반가워 했다.
더욱이 대만일주를 하는 한국인은 본 적이 없다면서 카오슝에 들릴 예정이 있으면 연락 하라며 손수만든 명함을 건네 주었다. 이전 여행기에도 적었지만 유랑인의 계획은 ‘허핑다오 공원’으로 끝이었다. 이후로는 무계획(無計画). 바람따라 물 따라 가자는 식이라 타이동은 두 사람에게 맡기기로 했다. 두 사람은 중국어로 이야기를 하더니 타이동에 유명한 공원이 있는데 거길 가 보지 않겠냐고 했다.
그렇게 함께 라이딩 하고, 시진 찍고, 이야기 나누고, 공감 하고…짧은 만남이었지만 누군가와 함께 달려보고 싶었던 유랑인에겐 좋은 추억이 되었다. 이 후 두 사람과는 카오슝과 타이페이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두 사람과 헤어진 유랑인은 두 사람이 추천해준 온천을 즐기기 위해 ‘지번’으로 향했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폰이 말썽을 일으켰다. 더 이상 사진을 찍을 수 없게 된 것. 그 동안 사진관리를 안했더니 저장공간이 가득 차 버린 것. (아이폰 3Gs 사용;) 지금보면 웃음이 나오지만 당시로선 사진을 옮기지 않으면 여행기록을 생생하게 남길 수 없는지라 패닉이었다.
급한대로 PC방을 찾아보지만 시골이라 주변은 황량하기만 하다. 어쩌다 보이는 사람 일일이 붙잡고 친구가 알려준 중국어 “쩌리 푸진 요메이요 왕빠”를 시전해 보지만 유랑인의 발음이 이상한지 좀 처럼 알아듣질 못한다. 그래서 일본에서나 사용되는 인터넷 카페 ‘漫画喫茶(まんがきっさ)/ネットカフェ’도 시도해 보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영어 중국어 짬봉에 “Cumputer 왕빠 computer 왕빠 짜이 날?”에 몸짓 발짓 다 동원하니 그제서야 ‘아~!’ 하며 알아들은 현지인이 마을 어귀의 PC방을 알려주었다. PC방 찾아 헤맨지 두 시간 만이었다. 우리나라 피씨방은 후불이 보통인데 여기는 코인기에 동전을 넣고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요금은 시간당 10~15원(400~450원) 수준으로 우리나라의 반 값 정도였다.
피씨설정을 맘대로 바꿔놓는 사람이 많은지 ‘내 컴퓨터’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막아 놨길래 주인을 불러 외장하드를 반짝이처럼 흔드니 즉석에서 활성화 시켜준다. 역시 바디 랭기지는 어딜가나 통한다. 최고!!
전부 번체 중국어 였지만 10년 넘게 윈도우를 써 온 덕택에 작업을 하는데 별 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모르는 말은 옆사람에게 물어보니 알려 주었고~ 그나저나 한류열풍 덕분인지 ‘오디션’을 즐기는 사람이 많았다. 라그나로크 하는 사람도 많이 보였고…^^;; 우리나라 온라인 게임의 위상을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자료 정리를 끝내고 지번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온천하고 바로 비 맞으면 도로묵이긴 하지만 장기간 라이딩의 피로를 풀기엔 온천 만 한 것도 없으니 유혹을 뿌리치긴 어려웠다. 그것도 공짠데… 허나 아무리 헤집고 돌아 다녀도 공짜 온천은 보일 생각을 안한다. 가족온천이나 이용하자는 생각에 들어가 보니 입욕료가 자그마치 300원.(일본 온천보다 비싸다.) 자는것도 아니고 한 두시간 찌지는데 300원이라니 날강도가 따로없다. 이 돈이면 도시락이 대여섯개다. 대여섯개!!
결국, 유랑인의 절친 경찰서(?)를 찾아 공짜온천에 대해 물으니, 이름과 위치를 적어주는데 이름을 보니 ‘충의사’ 라는 절이었다. 그렇다. 공짜온천의 정체는 ‘사원’이었던 것이다. 유랑인은 두 시간동안 ‘温泉(온천)’ 이란 글자만 가지고 지번을 헤집는 삽질을 한 것이다. ‘……혈압… ‘
충의사 온천은 공동 욕탕이 아닌 개인탕이라 유랑인에겐 더 할 나위 없었다. 은근슬쩍 빨래도 할 수 있고 말이지.(笑) 욕조에 온천수를 받아 몸을 담그니 피로가 확 날아간다. 온갖 매연에 시달리면서 거칠어진 피부도 뽀송뽀송 해지는 느낌이고…… 온천 찾는다고 고생 했지만 힘들게 찾아다닌 보람은 있었다.
한 시간을 푹 담그고 복전함에 복채를 넣고 남쪽으로 내려가는데 비가 다시 시작되었다. ‘별거 아니겠지’ 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장대비로 바뀌면서 즐거웠던 온천욕의 기분을 순식간에 머리에서 ‘삭제’시켰다.(병주고 약주기) 나무 하나 없는 대로변에서 시작 된거라 피할 곳도 없어 어쩔 수 없이 타이마리로 나아갔다.
빗 속을 뚫고 나아가길 한 시간 타이마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찰서가 바로 보이길래 ‘옳거니!’ 하며 여기서 텐트를 펴도 되는지 물어보았다. 경찰은 난감해 했지만 혼자 여행하는데 안전을 보장받기 어렵다니, 비가 와서 추노가 되었다니 이런저런 사정으로 밀어 부치니 못 이기는 척 차고에 펴는걸 허락해 주었다. 텐트를 치고 한술 더 떠 샤워를 부탁하니 아예 전용 샤워실을 사용하게 해 주었다. 거기서 샤워를 하고 간단하게 빨래를 했다.(어부지리) 덕분에 애꿏은 순찰차는 차고에 차를 대지 못하고 비 맞는 신세가 되었다.(묵념, 너의 희생에 감사한다.
타미말리는 대만 서부로 넘어가는 거점이 되는 곳이라 지금까지 묵었던 마을에 비하면 규모가 큰 마을이었다. 식당은 기본이고 대형마트도 있어 오랜만에 군것질을 했다. 저녁을 먹고 마트에서 경찰에게 줄 과자와 간식을 샀는데, 경찰은 마음만이라도 고맙다며 편하게 쉬어가라고 했다. 대만 경찰도 우리나라처럼 민간인에게 뭘 받는게 터부시 되는 것 같았다.(뇌물?)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경찰서를 나와 텐트위에 빨래를 널어놓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내일은 동부지역을 벗어나 서부로 가게 되는데 서부 지역에서는 어떤 일이 유랑인을 기다리고 있을까?
야영지 – 타이마리 경찰서
전체평가(별 5개 만점) : ★★★★★
안전 보장되고, 샤워 가능하고, 충전 가능하고…. 이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