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전거 여행 #02] 일본, 그 험난했던 신고식 (후쿠오카 -> 다자이후)

본 페이지는 Apple의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실험적으로 지원합니다. iMac 5K, Macbook Pro Retina Display 에서 더 깔끔하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일본 자전거 여행을 떠나는 날. 2009년 이래 매년마다 일본을 다녀오긴 하지만 장기여행으로 가보긴 처음이라 설렘은 배가된다. 짬지님의 50일간의 일본 자전거 여행기를 읽고 자전거 여행을 꿈꿔온 지 6년만에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날이 왔기 때문이다.

일본 자전거 여행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함께하는 여행’이다. 솔로 플래이도 좋지만 ‘말동무라도 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사촌 동생이 있어서 심심함은 덜 수 있을 것 같다.

가자! 일본으로~!

가족의 배웅을 받으며 부산으로 향하는 열차에 올랐다. 여름이지만 휴가철이 아니라서 사람은 없다. 한숨 자면서 부산까지 편하게 도착했다. 평화시장에 들러 가스버너용 어댑터를 사니 출국시간이 다 되었다. 출국 전 마지막으로 한국음식 한 번 먹고 가려 했는데 아쉽다….

부산 국제여객터미널 출국장
사람들로 북적이는 부산 국제여객터미널 출국장

부산 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하니 왠걸? 소문과는 달리 일본 가려는 사람으로 북적북적. 동일본 쓰나미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2011년 7월이고, 평일인걸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다. 일본여행 파리 날린다고 하던데 맞기나 한 건지….

부산 국제여객터미널 대형 수화물 X-Ray검사정
부산 국제여객터미널 대형 수화물 X-Ray검사장 – 여기서 짐을 다 풀어야 했다

출국심사를 하기 전 자전거와 짐을 부쳐야 하는데, 부피가 부피인지라 X-Ray 검사는 특별한 곳에서 이루어졌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검사를 위해 자전거에 묶어놓은 짐을 다 풀어야 한다는 말에 짜증이 밀려왔다. 그냥 하면 안 되냐고 하니 죽어도 안 된단다. 따지고 늘어지다간 피곤할 것 같아 순순히 응하긴 했지만 우리나라 공무원들 융통성 하나 지지리도 없구나.

어쨌든, 수속을 마치고 배에 올랐다. 우리가 타고 갈 배는 카멜리아(Camelia line)호로 부산과 후쿠오카(福岡)를 매일 왕복하는 정기선이다. 밤 11시까지 부산항에서 대기하다 출항, 후쿠오카에는 오전 7시 30분에 도착하니 오전을 온전히 보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부산과 후쿠오카를 왕복하는 카멜리아호
부산과 후쿠오카를 왕복하는 카멜리아호 – 특별한 시설은 없다

아침까지 배에서 보내야 하기 때문에 즐길 거리를 챙겨오는 게 좋다. 선내엔 지루함을 달래주기 위한 오락실이나 카라오케(노래방)이 있지만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메탈슬러그를 보고 혹하기도 했지만….

돈주고 사먹은 쓰레기
이런 걸 돈주고 사먹다니…..

배에선 딱히 할 것도 없으니 주린 배나 채웠다. 먹을 거라곤 맛없게 생긴 500엔짜리 자판기 도시락이 전부지만, 내일을 위해 꾸역꾸역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밥을 먹고 운동겸 선내를 기웃거리다 보니 출항을 알리는 기적(汽笛) 소리가 들렸다. 갑판으로 올라가 멀어져 가는 부산 밤바다를 보며 여행에 대한 각오를 다진다.

멀어져가는 부산 밤바다
멀어져가는 부산 밤바다

‘정말 떠나는구나…. 그리고, 이제부터 시작이구나….’

험난한 신고식

한숨 자고 일어나니 카멜리아호는 후쿠오카 하타카(福岡博多港)에 도착해 있었다. 하카타항 주변은 공업지대와 저장탱크(사일로) 뿐이라 미래소년 코난의 인더스트리아 처럼 삭막하게 느꼈겠지만, 오늘만큼은 이상하게도 각별하게 느껴진다. 꿈꿔왔던 일본 자전거 여행이 시작되는 곳이라 그런 거겠지?

후쿠오카 하카다항 공업지대
미래소년 코난의 인더스트리아를 떠올리게 하는 하카타항 공업지대
베이사이드 플레이스 하카타와 하카타 포트타워
후쿠오카에선 나름 랜드마크(?)인 베이사이드 플레이스 하카타와 하카타 포트타워

이제 입국심사 등 각종 수속을 밟아야 하는데 입국심사부터 쉽지 않다. 우리가 남루한 모습을 하고 있던 탓도있지만, 입국카드에  체류 예정일을 솔직하게 90일로 빠방하게 채워 넣었기 때문이다. 지문 찍고 사진 찍고 호텔 알려주고 통과되는 평소의 입국심사가 아니었다.

하카타항 국제터미널 입국장
줄이 길게 늘어진 일본 입국심사장 – 이만한 사람들이 우리 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가방 깊숙이 넣어 두었던 귀국행표와 호텔 바우처(예약증), 신용카드 등 이것저것 보여주고, 여행일정을 설명하고 나서야 간신히 통과 할 수 있었다. 여기서 끝나면 얼마나 좋을까? 외국어에 익숙지 않은 사촌동생 입국심사도 대신 해주느라 30분을 넘게 끌었다. 뒤에 줄선 사람들의 짜증섞인 목소리는 덤….

이제, 세관과 검역을 통과해야 하는데 여기도 그냥 보내주지 않는다. 바퀴에 흙이 보인다며 난데없이 닦으라는 게 아닌가? 우리나라 식물 종자가 일본에 퍼져 생태계를 교란시킬수 있다는데, 납득이 가진 않았지만 안 닦으면 안 보내주니 “하이(네)”라고 답하고 묵묵히 닦았다. 10분 정도 닦고 있으니 가라고 보내주는데 여행 시작 하기도 전에 퍼져 버리겠다.

일본에 입국한 유랑인
그래도 힘들게 통과했으니 사진은 찍었다.. 웃는게 웃는게 아니여~

끝나지 않은 신고식

우동으로 배를 채우고 구마모토(熊本) 로 향했다. 일본을 아무리 많이 왔어도 자전거 여행은 처음이니 초반엔 익숙한 지역을 돌아보며 적응하는 시간을 갖기로 한 것.

하지만 일본에서 자전거 타기란 그렇게 쉬운 게 아니었다. 우리나라와 대만에선 자동차 때문에 고생했다면 여긴 자전거 타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고생했다고 해야하나? 천천히 가고 있는데 뒤에서 ‘띠링띠링’ 거리는 건 예사고, 갑자기 비집고 튀어나와 놀라서 넘어질 뻔 하기도 했다.

동시에 자전거 도로에 대한 환상도 무너졌다. 자전거 도로가 갑자기 끊어지는 건 예사고 직선거리 500M가 안 되는 멀쩡한 길을 놔두고 일부러 돌아가게 만든 곳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보단 천국임엔 틀림없다. 자동차 운전자가 크락션을 울리지도 않고 배려도 해주고… 뭐 적응되면 괜찮아 지겠지.

후쿠오카(福岡)를 나와 다자이후(太宰府)로 접어드니 한적한 시골풍경이 우리를 맞이한다. 후쿠오카에서는 우리가 뭘 하는지 신경도 안 쓰는 사람이 많았지만, 다지이후에서는 스포츠 드링크를 챙겨주거나 안전한 길을 알려주는 등 좋은 사람이 많았다.

후쿠오카에서 다자이후 가는 길
다자이후 가는 길에 길 위에서 만난 인연~

그렇게 다자이후의 명물이라고 할 수 있는 다자이후 텐만구(太宰府天満宮)에 도착했다. 학문의 신이 봉해져 있는 곳으로 매년 수험철이면 전국에서 엄청난 사람이 몰려드는 곳이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라 학업에 대한 기도는 미뤄두고 오미쿠지(おみくじ)로 운을 점쳐 보았다. 나는 그런대로 운이 서는 중길(中吉)이 나왔지만 사촌 동생은 흉(凶)이 나왔다.

다자이후 마을축제
다자이후 텐만구로 가던 중 어린이회에서 마련한 마을축제 구경 & 야키토리 먹기~
다자이후 텐만구(천만궁)에서
다자이후 텐만구(천만궁)에서 유랑인과 사촌 동생(좌측)
오미쿠지 결과는 중길~!
오미쿠지 결과는 중길~!

다자이후 텐만구를 둘러보니 해가 뉘엇뉘엇 떨어지길래 다자이후가 보이는 언덕위에 텐트를 쳤다. 신사에 텐트를 치고 싶었지만 여행 초반이라 그런 용기는 나지 않았다. 1)대만과 한국에서 했던 경험은 어디에 팔아먹은건지…. 정자가 있어 갑작스러운 비를 피하긴 좋았지만, 화장실이 없어 샤워를 못한 채 잠을 자야 했는데 그 찜찜함이란.

다자이후에서 첫 캠핑
다자이후에서 첫 캠핑(노숙….) – 텐트치기부터~
다자이후에서 캠핑하며 해먹은 카레라이스
다자이후에서 캠핑하며 해먹은 카레라이스 – 변변한 반찬 하나 없는 진정한 남자의 요리~

야영지 – 다자이후 텐만구 인근의 정자

전체평가(별 5개 만점) : ★★★

비를 피하긴 좋았으나, 화장실이 없어 샤워와 용변은 미리 해결해야 한다. 모기도 있는거 같으니 모기 스프레이는 필수.

이동경로 : 한국 ->후쿠오카(福岡) -> 다자이후(太宰府)

일본 자전거 여행경로 - 울산에서 일본 다자이후까지
일본 자전거 여행경로 – 울산에서 일본 다자이후까지

References
1 대만과 한국에서 했던 경험은 어디에 팔아먹은건지….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