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부터 본격적인 ‘대만 자전거 일주’의 시작이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자전거 여행의 서막임과 동시에 지금까지 해왔던 편안했던 생활과 작별해야 하기 때문에 설레기도 했지만 겁도났다. ‘사나이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뽑아야지’라며 귀국에 필요한 자전거 가방과 포장재를 호스텔에 맡기고 이틀간 함께 지내며 정들었던 피터(태국인인데 피터로 불러주길 원하더라)와 기념사진을 찍고 출발!!
그런데… 출발한지 얼마 안되 자전거에 묶어 놓았던 짐이 줄줄 흘러 내리기 시작했다. 자전거 여행이라곤 울산-경주-포항이 고작이고 그때도 배낭 하나만 가볍게 메고 다닌지라 자전거에 짐을 묶는 요령이 없다시피 했다. 급한대로 근처 자전거 가게에 들려 도움을 청하니 제법 긴 줄을 구해 짐이 풀리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해 주었다. 덤으로 머드가드(진흙가드) 정비도 해주며 “짜요(힘내)”라고 하는데 정말 힘이났다. 잠시 쉬어가며 아침 겸 점심을 먹는데 아줌마 두 명이 앞에 앉길래 말을 걸어보았다. 방향은 알고 있지만 대만사람과 조금이라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에 단수이로 가는 길을 물었다. 난데없는 외국인의 질문에 당황했는지 두 여인은 황급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데 그 모습이 귀여웠다.
단수이로 가는 길은 평탄했다. 자전거 도로가 잘 정비돼 있어 일반 차들과 같이 편하게 달릴 수 있었다. 관련 법규도 잘 정비되어 있는 듯. 몰상식한 택시기사가 자전거 도로를 달리다 경찰에게 걸려 딱지를 떼이는 장면은 너무나 통쾌했다. 대만이 자전거 여행자의 천국이란 수식어가 왜 나오는지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대만은 자전거 전용 도로가 매우 잘 되어있다.단수이가 가까워지면서 차들이 점점 많아진다. 타이페이 사람들이 바다를 보러 마실을 나가는 곳이라던데 그런 곳 답다. 단수이역(Danshuei Station)에 도착해 인증샷을 찍고 간식을 먹으며 시원한 바닷바람으로 더위를 식힌다. 단수이까지 오느라 고생한 자전거를 위해 바다를 배경으로 한 컷 찍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한국에 있을 땐 셀카를 찍는일이 거의 없었는데 여기선 뭐가 신났는지 아이스크림을 들고 찍기도 하고 밥 먹으면서 찍기도 하는 등 한국에서 다른사람 눈치보여 못했던 행동을 마음껏 했다. 유랑인은 한국에서 심적으로 많이 억눌리면서 지낸것 같다. 은둔형외톨이(引き込もり) 였으니까.
단수이엔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로 유명한 담강 중학교(Tamkang Junior High School)가 있다고 해서 찾아 가 보았다. 영화를 본지 오래되어 가물가물 하지만 남자 주인공이 여자주인공을 그리며 그랜드 피아노를 박력있게 치는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랜드 피아노가 있는 음악실은 볼 수 없었지만 유럽식 분위기가 묻어나는 교정을 거닐며 소소하게 사진을 찍는것도 즐거웠다. 담강 중학교는 근처의 Aletheia University(진리대학)와 함께 영국에서 설립한 학교로 대만에서 손꼽히는 명문이라고 한다. 두 학교 모두 영국 식민지 시절 옥스포드 대학에서 세웠다고 한다.
담강 중학교를 둘러본 이후 포트 산 도밍고(Port San Domingo)를 둘러봤다. 언덕이 많은 단수이는 해상에서 오는 적을 감시하기 좋아 스페인 식민지 시절 포대를 설치해 적을 감시했는데, 이 후 영국이 대만을 점령할 때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외국 진출을 활발히 했다면 영국이나 스페인처럼 자국언어 사용률이 세계에서 손가락안에 들진 않았을까? 조그만 섬나라까지 영향력을 끼친 서양 열강을 보며 아쉬움이 컸다.
포트 산토도밍고에서 나를 안내해준 안내인은 한국에 무척 관심이 많았다. 일어와 영어를 구사할 줄 알지만 한국어는 모른다길래 한국어 알파벳을 가르쳐 주었는데 유랑인이 생각해도 너무나 엉성했다. 국어의 정확한 영어 표기법이라도 공부해 둘걸. 외국인에게 한글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한점은 지금도 부끄럽다. 포트 산 도밍고를 둘러보니 어두워 지기 시작했다.
이제 적당한 자리를 찾아 텐트를 치고 잠을 자야한다. 그러나 야영경험이 없으니 어디에 텐트를 쳐야할지 막막했다. 단수이는 너무 번화한 곳이라 아무데나 치면 사람들의 눈치가 보이고 그렇다고 무작정 헤멜 순 없는 노릇이니 일단 시먼(진행방향)으로 나아가 보기로 했다. 단수이를 벗어나 시먼 방향으로 한 시간 정도 달리니 고급스러운 개발지구가 보였다. 공사가 진행중인 지역이라 차들이 못들어오게 차폐물이 된 곳이 많았는데 인근에 대학교가 있어 괜찮아 보였다.
대학교 편의점에서 공수해온 도시락과 마실거리로 저녁을 먹고 샤워는 물 티슈로 대신했다. 편의점 옆에는 번듯하게 화장실도 있었으나 유랑인의 야영경험이 떨어져서 장애인 화장실에 들어가서 샤워를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얼른 프로가 되어야 할 텐데….’
완벽하진 않지만 민간인 에서 초보 야영인으로 변신하는데 성공한 유랑인. 앞으로의 30일도 화이팅 하자~!! 아자아자~!!
야영지 – 단수이 고급주택 개발지구
전체평가(별 5개 만점) : ★★
첫 야영부터 비를 맞고… 편안한 잠자리는 아니었다. 그래도 근교에 대학교가 있어서 먹거리는 저렴하게 해결 가능했다.
이동경로 – 타이페이, 단수이
초고작성 : 2013.07.06 / 2차 수정 : 2013.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