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피하러온 한무리의 개들이 텐트주위를 서성거린 탓에 밖에도 맘대로 못나가고 그야말로 최악의 밤을 보냈다. 아침에도 비는 계속 이어지고 빗방울도 굵어졌다. ‘최고의 날씨군…….’
그래도, 모처럼 지우펀에 왔는데 금덩이는 만져보고 가자는 일념하에 빗방울을 뚫고 마을로 들어섰다. 지난 밤 마을입구에서 진을치던 개들이 사라져 안심하고(?) 마을로 진입했다. 비가 온 탓일까? 고산지대인 탓일까? 냉기가 느껴진다. 저지대와 고지대의 기온차가 심하니 주의해야 한다는 것을 얼핏 들은적이 있는데 겪어보니 알 것 같다. 감기에 걸릴 것 같아 슈퍼에 들어가 라면을 먹으며 몸을 녹였다.
잠잠해 지겠지 싶었는데 갈수록 심해지는 비. 그렇다고 여행을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급한대로 자전거를 가게 주인에게 맡겨놓고 금광 박물관으로 향했다.
‘금덩이 만지기 참 힘들구나…. ‘
사실 유랑인이 지우펀에 온 가장 큰 목적은 웃길지도 모르겠지만 금덩이 만지기였다. 뭐랄까….. 220Kg가 넘는 금덩이를 직접 만지면 왠지 ‘복이 넝쿨째 굴러올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이것을 위해 어제는 개들과 동침을 하고, 오늘은 아침부터 빗물로 샤워를 하고(게다가 진행형)…..하하하하……
온 마을을 헤집고 다녀도 금광 박물관은 코빼기도 안 보이고 얼떨결에 유명 관광지인 지우펀 상점거리에 도착해 버렸다. 아지가지한 골목에 부티크, 식품점, 오카리나 가게 등이 오밀조밀 모여있는게 일본사람이 좋아할 할 법한 색채를 띄는 곳이었다. 거기에 비가오면서 생긴 구름과 안개가 마을을 수 놓으니 판타지 세계에 온 것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신비롭게 보였다.
‘그냥 여행이었다면 분명 황홀했겠지…?’ 이럴 땐 자전거 여행이 아쉽기만 하다. 지우펀의 아름다움에 반하면서도 제대로 즐길만한 여유가 없으니까…..
‘아차차 이러고 있을때가 아니지…. 얼른 금광 박물관에 가야하는데……’ 마을사람에게 길을 물어 박물관에 도착했는데 유랑인을 기다리고 있던건 굳게닫힌 문과 입구에 걸린 두 글자 ‘폐관’. Jesus crisis! !Es muy maldición! 비는 비대로 맞아가며 온 마을을 헤집고 다닌 결과가 ‘폐관’이라는 팻말 하나라니….. 순간 울컥했으나 어찌어찌 잠재우고 그 뒤에 있는 글귀를 읽어 나갔다. 지도가 하나 그려져 있었는데 거기에 따르면 지우펀 금광 박물관은 다른 곳으로 이전 한 것 같았다.
‘으흐흐흐….어떻게 해서든 금덩이를 만지고야 말겠어….’ 폐관이란 사실에 정신적 데미지를 입고 이상하리만큼 독기가 올랐다.
경찰서에서 지우펀 금광 박물관이 ‘진과스(진콰스) 금광촌’으로 이전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가는 방법을 알아보았다. 비가 계속 내리고 있어 자전거는 슈퍼에 내버려두고(?) 시내버스를 타고 진과스(진콰스)로 향했다. 가까운 줄 알았는데 제법 거리도 있는데다 산을타는 코스라서 자전거를 고집했다간 진정한 헬 게이트를 경험 할 뻔했다.
‘진과스(진콰스) 금광촌’은 일본에 의해 1900년대에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되었고, 전성기인 1930년대엔 기숙사와 학교가 들어설 정도로 번영을 누렸다고 한다. 그러나 금맥이 서서히 옅어지면서 마을도 쇠락의 길을 걸었는데 대만정부와 마을사람의 노력으로 유명한 관광지로 거듭나게 되었다고 한다. 하긴 220Kg에 달하는 금덩이를 직접 쓰다듬을 수 있는데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게다가 동양은 금덩이 이꼬르 ‘복(福)’ 아니던가.
문화 해설사(가이드) 설명을 들으니 대만은 일본에 대해 상당히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걸 느꼈다. 진과스(진콰스) 금광촌도 엄밀히 따지면 일본이 자신들의 야욕을 위해 개발한건데 말이지…… 왜 그런지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일본에 흡수될 때만해도 대만은 사회기반시설이 부족해 발전이 어려웠다고 한다. 일본이 그것을 지어주면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다른 식민지 국가와 달리 온화한 통치를 했다고 한다. 그래선지 일본물건은 무관세 통관이 많다고 한다.
드디어 기대하고 기대하던 금광 박물관에 입장. 순도 100%에 가까운 220Kg짜리 금덩이를 열심히 쓰다듬었다. 그리고 추노가 된 상태로 금덩이를 쓰다듬는 인증샷도 찍었다. 사실 금광 박물관은 금덩이만 쓰다듬고 나오긴 아쉬울 정도로 건텐츠가 좋았다. 금광 개발의 역사, 금을 선별하고 제련하는 과정, 금이 일상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등….일상에 유용한 정보가 많았다.
마음 같아선 느긋하게 둘러보고 싶었는데 슈퍼에 세워놓은 자전거가 마음에 걸렸다……
지우펀으로 돌아오니 어느덧 저녁이 되어있었다. 비는 계속 내리고 몸은 흠뻑 젖었고… 이런 상태에서 노숙을 하다간 큰일 날 것 같아 숙소를 알아보기로 했다. 지우펀의 숙박요금은 비싸다고 들어서 마을 변두리의 허름한 민숙을 찾아갔는데 하룻밤에 1,500원(한국돈 대략 42,000원)을 내라고 한다. 날강도가 따로없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경찰서에서 하룻밤을 부탁했다. 유명 관광지라 예상은 했지만 안된다는 대답에 힘이 풀린다. 경찰관들도 유랑인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저렴하게 잘 수 있는곳을 수소문해 주겠다고 했다. 여기저기 전화를 하더니 교회에 빈방이 있다며 안내해 줄테니 따라오라고 했다. 유명 관광지에 있는 경찰서에서 관광객을 재웠다간 다른사람도 그렇게 할 게 뻔하니 이해 못하는건 아니지만 조금 야속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도와준건 너무나 고마웠다.
공자사상이 만연한 대만에서 교회를 찾아보는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이런식으로 교회를 보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교회에선 숙박요금으로 600원을 부르던데 애처롭게 부탁하니 500원(한국돈 15,000원 정도)으로 깍아 주더라. 안내받은 방은 다섯명이 써도 될 정도로 넓었다.
자전거 여행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제대로 된 샤워를 했다. 밀린 빨래도 하고 일기도 쓰고 전자기기도 충전하고 천국이 따로없다. 주머니 사정상 숙박업소 이용은 자제하려고 했는데 페이스 유지를 위해선 일주일 1~2번 이용은 고려해 봐야겠다. 편의점 도시락으로 저녁을 먹고 느긋하게 지우펀의 골목을 거닐며 마음의 여유를 찾는다. 동생에게 줄 오카리나와 간식거릴 사면서 지우펀에서의 하루도 끝이났다. 아무쪼록 비가 그치길 바라며………
숙박장소 – 지우펀의 한 교회
전체평가(별 5개 만점) : ★★★★★
덧붙일 말이 있을까? 천국인데. 뜨거운 물 잘 나오고 방 넓고 충전도 편하게 하고……. ^^;;